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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노동자들이 부글부글 끓는 이유

서울교통공사노동조합 2022.06.24

오세훈 시장의 귀환 

‘첫날부터 능숙하게’를 캐치프레이즈로 내건 오세훈 후보가 10년 만에 서울시장에 복귀하자 지하철 노동자들은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오세훈표 노동정책이 ‘능숙하게’ 부활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이었다. 

우려가 현실로 드러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오 시장은 취임 직후 서울교통공사 사장을 불러 ‘강도 높은 경영합리화’를 지시했다. 만성적자에다 코로나 직격탄까지, 재정난에 허덕이는 공사를 두고 자구책부터 마련하라는 것. 공사 경영진은 속된 말로 ‘쪼인트’를 까인 끝에 경영혁신안을 전격 발표했다. 1,971명 인력감축을 목표로 한 근무형태 개악, 외주화 확대, 조직 통폐합이 주요 골자다. 10여 년 전 서울 지하철에 끔찍하게 불어닥친 구조조정과 완벽한 싱크로율을 보여준다. 

‘코로나 위기’마저 노동자에게 

이명박 정부가 이른바 ‘공기업 선진화’ 정책을 밀어붙이던 당시 서울시장이었던 오세훈은 그 첨병 역할을 했다. ‘시 산하 공기업 10% 이상 인력감축’을 지상목표로 제시했고, 산하 기관 경영진은 앞다퉈 구조조정 계획을 쏟아냈다. 지하철은 근무형태 개악과 외주화 확대를 인력감축의 지름길로 택했다. 정리해고나 다를 바 없는 ‘업무 부적격자 강제 퇴출제’를 도입하기도 했다.

노사 간 충돌은 불 보듯 뻔한 일, 항의 농성과 사장 출근 저지 투쟁이 연일 이어졌다. 서울메트로(1~4호선)의 경우 구조조정안을 발표한 지 3개월 만에 노조 간부 80여명에게 직위해제 등 무더기 중징계를 내렸다. 노동조합과 조합원에 가한 고소·고발도 100여 차례에 달했다. 전투경찰 100여 명의 호위 속에 사장이 출근하는 진풍경을 보이기도 했다. 

감원, 외주화 등 구조조정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는 부실한 안전 관리 문제가 끊임없이 터져 나왔다. 이는 수백명의 부상자를 낸 상왕십리 추돌사고, 구의역 참사의 전조였다. 
당시 귀에 못이 박히도록 떠들어대던 서울시의 훈시는 ‘글로벌 금융위기 극복을 위한 공공기관 경영혁신’이었다. 위기 극복은 언제나 노동자의 몫. 이제는 단어 몇 개만 바꿔 오세훈 시장과 함께 다시 찾아왔다. ‘코로나 재정위기 극복을 위한 공사 경영혁신’이란다. 세계적 유행 감염병으로 닥친 위기마저 노동자에게 떠넘길 줄이야. 

‘인형 팔이’에 나선 공사 사장 

지난해 적자 1조 1000억원, 올해 예상 적자는 1조 6000억원. 서울교통공사가 직면하고 있는 사상 초유의 적자 규모다. 서울교통공사는 연초부터 ‘특단의 대책이 없으면 임금체불은 물론 채무 불이행 사태까지 벌어질 수 있다’고 발표했다.
지난봄엔 사장이 캐릭터 인형 판매행사까지 나섰다. 심각한 재정난을 호소하는 이벤트였다지만 노동자들은 쓴 입맛을 다실 수밖에 없었다. ‘이러다 인형 눈깔 붙이는 잔업이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허탈한 농담이 오갔다.

언론을 통해 ‘파산 위기’ ‘임금체불’ 따위의 흉흉한 얘기가 떠돈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난해 공사의 순손실액은 두 배가량 폭등했다. 코로나 사태 여파로 승객은 30% 가까이 뚝 떨어졌고 운수 수익은 전년과 비교해 4천5백억가량 줄었다. 연초 코로나 확산세가 잠시 잦아들면서 회복세로 접어드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지만 다시 주저앉는 추세다. 그뿐이랴. 무임수송 등 공익서비스 비용에다, 노후 시설 재투자 비용은 해가 갈수록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적자철’이라는 오명과 진실   

서울지하철에 낙인처럼 찍힌 ‘만성적자’의 근원부터 따져보자. 1기 서울지하철공사는 설립 당시 건설 부채를 떠안고 건설재원의 74%에 달하는 1조7천6백억 원을 부채로 충당했다. 2기 지하철인 도시철도공사도 비슷한 방식으로 부채를 떠안았다. 외국의 경우, 건설비용 대부분을 시비나 국비로 충당하지만, 서울지하철은 총사업비의 70% 이상을 운영기관이 부담하는 꼴이었다. 태생부터 수십 년간 빚으로 빚을 갚는 악순환에 처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그러나 시·정부나 언론은 이에 애써 눈감고, ‘방만 경영’과 낮은 ‘노동 생산성’을 지적해왔다. 

운영적자의 원인도 좀 더 따져보자. 노인, 장애인 등에게 제공하는 무임제도에 따른 비용은 해마다 증가해 당기순손실 대비 70%에 달하고 있다. 버스 환승 할인 등까지 더하면 공공서비스 제공 비용은 당기순손실을 웃돌고 있다. 무임제도는 국가 정책에 따른 교통복지 비용이지만 정부로부터 단 한 푼도 지원받지 못하고 있다. 대부분 국가는 공공교통 할인제도로 발생하는 손실을 중앙 또는 지방정부가 보상하고 있다. 한국처럼 운영기관이 손실 비용을 부담하는 사례는 찾아볼 수 없다. 

코로나 사태는 엎친 데 덮친 격, 요금 의존도가 높은 지하철에 승객이 급감하는 건 치명타였다. ‘기저질환자가 코로나에 걸린 격’이란 말이 나올 정도다. 

“못 참겠다, 멈춰보자” 

코로나19 대유행으로 도시철도가 심각한 운영위기에 처한 것은 세계적으로 공통 현상이다. 도시봉쇄와 운행 축소, 재택근무 확대 등으로 이용자 수가 급감한 것이 그 이유다. 한국과 별반 다르지 않지만 긴급 재정지원이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 큰 차이점이다. 이영수 사회공공연구원 연구위원의 보고서(「코로나 시기 해외 대중교통 재정지원 사례」)에 따르면 ’해외 주요 국가들은 중앙과 지방정부 가리지 않고 대규모 재정을 지원했고, 이를 통해 공공서비스 수준 유지와 노동자들의 고용안정을 꾀했다‘고 한다. 

다시 서울지하철을 돌아본다. 한숨이 절로 나온다. 정부도, 서울시도 재정난 책임을 운영기관에 떠넘기고, 경영진은 도리가 없다는 듯 구조조정안을 펼쳐 놓는다. ’폭탄 돌리기‘로 일관하던 정부와 서울시는 한목소리로 ’자구책이 먼저‘라고 으름장이다.
지하철 노동자들이 부글부글 끓는 건 당연한 일. ’밀당‘할 일도 없이 교섭은 결렬됐고 쟁의찬반투표를 거쳐 총력투쟁을 예고하고 있다. 전국 도시철도 노조들도 공동 행보를 밟고 있다. 구조조정이 코앞에 닥친 서울과 같진 않지만 모든 도시철도가 직면할 수 있는 현실이라는 데 경각심을 같이하고 있기 때문이다. 

’재정난과 구조조정‘이라는 쳇바퀴

노조의 핵심적 요구는 공익서비스 비용(PSO) 국비 보전 등 공공교통에 대한 재정지원 확대와 구조조정 중단 · 현장인력 확충이다. 코로나 재난 시대에 더 긴요해진 필수 공공서비스의 유지·확대에 대해, 정부가 그 책임을 다하라는 것이다. 

교통복지비용에 대한 정부 지원은 재정난에 허덕이는 도시철도기관의 숨통을 트이게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노조도 재정지원만을 종국적인 목표로 보진 않는다. ’파산 직전‘이라는데 무슨 한가한 소리냐고 할 수 있겠다. 이제는 운영수지 상의 적자 논란과 쳇바퀴 같은 재정부담 공방을 넘어서야 한다는 말이다. 나아가 공공교통기관의 사회경제적 기능과 가치를 적극적으로 평가하고 공적 투자 확대와 정책 전환이 이뤄져야 한다. 그러지 않고서는 운영난이 닥칠 때마다 요금 인상과 구조조정을 시계추처럼 오갈 뿐이다. 
마침 포스트 코로나, 기후위기 시대, 공공교통의 역할이 중요한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공공교통의 미래를 논하려면 지하철을 ’애물단지 적자철‘로 매도하고, 툭하면 구조조정을 꺼내 드는 낡은 관행부터 바꿔야 하지 않을까. 

(이 글은 전국철도노조에 기고한 칼럼으로 철도노조 웹진에 함께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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