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 회의 글 “자살-사상사고! 막거나 피할 수는 없을까?”
노조 승무지부는 열차 속보를 배포하는 한편, 역사 대자보를 부착, 이용시민에게도 호소했다.
화면이 두 개인 작은 흑백 모니터로는, 승강장 승객 동태를 다 살펴볼 수 없다. 특히 곡선 승강장은 곳곳이 사각지대다. 승무원(차장)이 승객 상황을 확인할 수 없다.
* 사진 설명 – 2호선 전동차 운전실 전면유리 모서리 부분. 사상사고 등 파손으로 인한 기관사 부상 방지위해 안전필름이 들어 있음.
‘인명 사고 예방, 시설 개선’, ‘구속 승무원 즉각 석방!’
시민단체 등과도 승객 안전 대책을 논의하며, 조합원 구속 등 상황에 공동대처하기로 의견을 모아갔다.
1,800승무원(조합원)의 지지와 호응을 받아가며 전개되고 있었다. 준법 투쟁을 직접 실행하는 동작승무, 상계승무에서 분위기가 점점 고조 되었다.
열차 운행 지연이 상당했다. 4호선은 승강장이고 역사이고 곳곳에서 승객들로 넘쳐 났다.
서울지하철공사 경영진과 서울시에도 비상이 걸렸다. 사태 전개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나름 수습해 보고자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노조 승무지부는 준법투쟁 3일차부터 ‘1-4호선 전체의 투쟁으로 확대한다’고 선언했다.
1호선(종로), 2호선(구로, 성수), 3호선(옥수)승무지회에서도, 역당 30초정차 준법투쟁에 들어가는 준비를 마쳤다.
결국, 준법투쟁 3일차에 노사는 합의서를 체결했다. 서울지하철공사가 기존의 입장을 바꾸고, 사실상 백기를 들었다.
합의서를 체결한 그날, 구속되어 있던 차장이 석방됐다. 노조 승무지부의 준법투쟁은 일단 성공적으로 종료되었다. 외환의 극복을 통해 그 힘을 가지고 다음 단계로 전환될 수 있었다.
* 사진 설명 – 1호선 청량리역 1,6번 출구앞 매표소. 1974년 영업이후 지금까지 구조가 거의 안바뀜. 경동시장 이용시민 노인층이 주로 드나드시는 통로임
준법투쟁 전 과정과 합의내용을 거쳐, 승강장안전문(스크린도어:PSD) 설치가 승무원 전체의 염원에 가까운 해결 요구사항이 되었다.
사람이 죽거나 다치고, 종사자도 정신적 충격에 휩싸이는 저 끔찍한 사건에서 벗어나려는, 서울지하철 승무원들의 열망이 표출되었다.
결국, 열차가 빈번하게 운행하는 선로로 뛰어들거나, 심신미약 상태 등으로 선로에 드나드는 그 자체를 ‘원천봉쇄’ 해야 한다는 집단적인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노조 승무지부는 이를 조직적인 요구로 결정하였다. 1994년 그해 노사 교섭에서, 노조는 안건으로 ‘승강장 출입문 설치건’을 제기했다.
당시 싱가폴 지하철에 다녀온 직원이, 그곳 승강장에 설치되어 있는 안전문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왔는데 그것은 충격적이고 획기적인 자료였다.
그 당시 매년 승강장 선로에서 일어나는 사상사고는 30건(명) 이상이었다.
배면에 깔린 우려는 승강장 감시 업무 경감 및 시설 유지관리 업무 증강에 대해, 공사가 책임 있는 대책을 가지고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96년 : 승무원이 사상사고 시 겪을 수밖에 없는 충격을 반영해서, 사고 이후 3일간 유급휴가를 노사 합의로 부여했다.
97년 : 사상사고가 발생하면 최단시간에 소속과 관계없이 승무교대 되도록 노사가 합의했고, 이후 시행하였다.
2005년 : 사상사고 관련 승무원의 정신적 충격 및 급성 스트레스 해소 등을 위해, 치유프로그램을 실시하기로 노사가 합의했다.
승무지부는 그 근본적인 해결책으로 ‘스크린도어 설치’를 제시했다. 그것은 이용시민의 안전과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노력이기도 하였다.